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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심리학

가끔은 제정신 - 허태균

 

 

우리가 아무리 진실이라고 열심히 믿어도, 그 믿음이 결코 진실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동시에 진실일수록 반드시 우리가 더 확신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진실은 하나로 정해져 있다. 단지 그걸 우리가 죽기 전에 알게 되는지, 만일 알게 된다면 언제 알게 되는지의 문제일 뿐이다. 곰곰이 앉아서 한번 따져보자. 내가 사실이라고 확신하는 (또는 아는) 것들 중에,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한, 또는 누군가가 직접 확인한 순도 100%짜리 진실은 얼마나 될까?

<가끔은 제정신> 중 24p

 

이 책은 착각에 대한 책으로, 사람이 얼마나 착각을 많이 하면서 사는지를 풀어서 써놓은 글이다. 심리학의 한 부분에 관하여서 예화를 들며 쉽게 써놓은 책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위 문단처럼, 우리가 진실로 알고 있고 확신하는 것도 착각일 수 있음에 대해 써져있다.

 

 

하지만 쥐가 무슨 행동을 하건 상관없이 아무 때나 무작위로 먹이가 떨어진다면 어떤 학습이 일어날까? 수반성이 없으니 학습이 안 될 것 같지만, 실제 학습이 일어난다. 무슨 행동이 학습될까? 쉽게 말하면 아무 행동이나 학습된다. 바로 초기에 먹이가 떨어질 때 우연히 하고 있던 행동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초기에 어떤 행동을 하는데 우연히 먹이가 떨어지면, 그 쥐는 그 행동을 더욱 자주 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행동의 비율이 전체적으로 늘어나므로, 당연히 나중에 무작위로 먹이가 떨어질 때 우연히 그 행동을 다시 하고 있을 확률도 증가한다. 이런 악순환에 빠지게 되면, 쥐는 하루 종일 그 행동을 하고, 아무 때나 떨어지는 먹이는 항상 그 행동을 하고 있을 때 떨어진다. 그래서 쥐는 믿는다. 자신이 그 행동을 하고 있기에 먹이가 떨어진다고. 사실 그 행동과 먹이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쥐는 그 믿음을 움켜쥔 채 그 행동을 절대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된 쥐가 사실은 자신의 행동과 먹이 간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가끔은 제정신> 중 48p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규칙같은 것을 배울 수도 있다고 설명하는데... 이 책에서는 이것을 예를 들어 종교도 비슷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설명한다. 종교적인 체험만을 신앙의 근거로 두게 될 때 그것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는 셈인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착각을 ‘가용성 방략’이라 말한다. 인간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릴 때, 그 사건이 일어날 실제 확률보다는 관련 정보가 얼마나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일상에서 교통하고가 훨씬 자주 일어나고 통계적으로도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이 높지만, 몇 번 일어나지 않는 비행기 사고가 훨씬 강렬하고 오랜 기억으로 남아 쉽게 떠오르는 것이다.

<가끔은 제정신> 중 129p

 

이러한 착각을 ‘스스로 장애 만들기’라 부른다. 자신이 실패할 거라는 두려움에 빠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자존감에 상처 입는 게 싫어서 오히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려 한다.

<가끔은 제정신> 중 150p

 

우리가 기억을 되살린다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 착각이다. 대부분의 기억은 다시 되살려낼 때 재구성된다.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있었던 일이라고 믿는 몇 가지 사건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 이렇게 기억나지 않는 대부분은 상상으로 채워야 한다. 그 상상은 실제 과거의 현실이 아니라, 그냥 그랬을 것 같은 그럴싸한 내용들로 채워진다. 기억의 일부는 되살아난다. 하지만 기억의 대부분은 다시 쓰는 소설이다.

기억에서의 착각은 사법체계에서는 재앙과 다름없다. 진실을 알지 못하는 판사, 검사, 변호사는 이미 일어난 일을 기억과 기록에 의존해 과거의 진실을 추정해야 한다. 여기서 증인의 증언은 직접적인 물증이 없을 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증거다. 하지만 대부분의 법정 증언은 사건이 일어난 지 몇 주, 몇 달, 심지어 몇 년 후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 사이에 관련 정보들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가끔은 제정신> 중 160p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고, 실제 일어날 확률을 무시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판단하는 착각을 하고, 이유가 분명히 있는 행동도 그 사람의 성격과 생각을 반영한다고 착각하고,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는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예언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대부분의 착각은 스스로를 증명하는 힘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자기 생각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사람들의 기억은 되살려질 때마다 거의 새롭게 쓰여진다. 이러한 착각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우리가 막으려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가끔은 제정신> 중 163p

 

사람들은 자신에게 보이는 걸로 세상을 이해한다. 자신이 듣거나 보지 못한 것으로 자신이나 다른 이들의 행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항상 자신을 제외한 다른 무언가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려 한다. 바대로 자신의 시야와 생각의 중심에 있는 타인의 행동은 항상 그 타인 자체로 설명하려 한다. 이러한 착각은 내가 그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집중하면 할수록 더 강해진다. 그래서 타인이 내게 한 모든 행동은 그 사람의 마음을 과대지각하게 만든다. 조금 잘해주면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것으로, 조금만 못해주면 완전히 마음이 변한 것으로. 그래서 신혼 때의 천사 같은 배우자는 사라지고, 어디선가 짠하고 나타난 원수와 같이 살게 된다.

<가끔은 제정신> 중 199p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현재보다 조금 더 좋은 상황을 상상하며 현실을 불만스러워한다. 하지만 현재보다 더 나은 선택만큼, 현재보다 더 나쁜 선택과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우리는 무한한 선택 앞에서 미래를 잘 알지 못하는 불확실성을 안고 ‘하나’를 선택한다. 그런데 나중에 선택의 결과를 알고 나서는, 마치 어떻게 될지 알았는데도 잘못 선택한 것같이 느낀다. 또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려 한다. 하지만 항상 겸손하게 받아들이자. 그 순간에는 그게 최선이었음을. 그래야 주어진 현실과 내가 선택해서 만든 현실에 좀 더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가끔은 제정신> 중 219p

 

집단사고는 여러 사람이 모여 집단적으로 의사를 결정할 때, 다양하고 현실적인 방안과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결국 비합리적인 결정에 이르는 현상을 뜻한다.

<가끔은 제정신> 중 248p

 

우선 자신들은 정의의 편이고 반대쪽은 무조건 나쁜 놈들이라 믿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하는 일은 모두 아름다운 명분이 있고, 반대쪽은 그 당연한 일을 막는 타락한 세력이라 믿는다. ‘악의 축’, ‘이교도를 처단하는 성전’, ‘정의실현을 위한 최소한’, ‘인권을 위한 투쟁’과 같은 표현은 무조건 그리고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절체절명의 과제인 것이다.

이런 자기 합리화는 절대무적, 백전백승의 착각을 일으킨다. 정의의 사도인 슈퍼맨이 악당에게 지는 슈퍼맨 영화는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종교인 경우는 더 심각한 착각에 빠지는데, 전지 전능하신 자신의 신이 돌봐주고 있으니, 잘못되고 싶어도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의심하면 곧 신의 존재와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굳이 자신들의 생각이나 주장이 맞는지 안 맞는지, 합리적인지 아닌지, 현실적인지 아닌지를 전혀 따져볼 필요도 없고 실제로 따져볼 용기도 없다.

<가끔은 제정신> 중 249p

 

하지만 지난 수십 년 간의 사회심리학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밝혀낸 하나의 결론은 항상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최소한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쉽게 그리고 많이 사회적 영향에 휘둘린다는 것이다. 자신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의견과 행동을 따라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기에 하는 행동인데도 마치 원래 자신의 뜻대로 하는 행동으로 착각하고, 개인보다 집단으로 하면 더 나을거라 막연히 믿는다.

<가끔은 제정신> 중 254p

 

사람들이 얼마나 착각을 많이 하며 살며,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은 왜곡되었기 마련이란다. 사람이 인지하고 사고하고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이렇게 조금씩 왜곡되고 잘못된 것이라면, 과연 우리가 하는 생각과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는 듯한 기억들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으며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을 때부터 사람의 완전한 것들은 모두 다 같이 타락했던 게 아닐까. 사람은 이러한 불완전성을 안고 살아간다.

 

심리학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갈수록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불완전한 존재인지 조금씩 더 알아가는 것 같다. 이게 진실이라면, 이러한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학문은 결국 모두 불완전할 것이다. 나의 사고도, 느낌도, 주장도, 믿음도... 모두 불완전한 것이지 않을까. 나는 불가지론자가 되어가는 것일까. 다만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뿐이다.